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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두시

현대 바스크 지방의 입체적 변화들

 <스페인 사회와 문화> 제출... 자료는 엄청 많이 봤는데 급히 써서 기승전병.. 사실 애초에 자료들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있지도 않았고(매우 다양했고) 덕분에 이것저것 잡학이 늘긴 하지 않았을까;; 각주는 바로 안 긁어지넹.. 일일이 다 붙이기엔 너무 많다 ㅠㅠ  우연히라도 바스크 검색해보는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킁 

 




현대 바스크 지방의 입체적 변화들


 

들어가며

세계 각지에서 일어났던 ETA(Euskadi ta Askatasuna, 바스크조국과 자유) 주도 하의 테러나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순혈정책을 고수하고 있는 빌바오 구단, 그리고 최근의 구겐하임 미술관으로 뜨고 있는 바스크는 많은 이들에게 매우 흥미로운 지역임에 틀림없다. 언어학적으로 가장 오래된 기원의 언어를 가진 채, 정치적으로 까딸루냐와 더불어 스페인 까스티야에 대항하는 모습, 바스크 족이라는 순혈적인 특성 등은 많은 이들에게 이 지역을 매혹적이고 신비로운 지역으로 바라보게끔 하는 효과를 낳는다. 하지만 바스크 지역에 대규모 이민자가 유입되고, 본질적인 민족 정체성이 점차 흐려져 가고 있는 현 시대에 이르러 바스크 민족주의는 점점 위기 상황에 몰리고 있다. 세계화라는 흐름을 가장 순수하다 여겨지는 바스크 역시 피해갈 수 없는 것이다. 한편으로 최근의 연구들은 단일성 틀 내에서 묶어내는 것의 맹점을 지적하고 있다. 다시 말해, 사람들이 바스크에 부여하는 독특성이나 의미 등은 신화화된 산물일 수 있다는 것이다. 마치 우리의 현실에서 찾지 못한 것을 다른 곳에 기대에 거는 것처럼. 이와 같은 태도는 오리엔탈리즘과도 연결이 된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가지기 쉬운-나 역시 지녔었던-, 바스크에 대한 맹목적 신화화에서 벗어나 다양한 변화의 양상을 드러내는 입체적 구성이 오히려 의미를 지닐 수 있겠다. 우선, 스페인 지역주의의 대표적 사례로서 바스크가 분리된 계기와 다시 포섭된 이야기에 대해 간략히 살피고, 최근의 변화 양상을 세 가지 층위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협동조합 몬드라곤의 성공 및 부작용, 유럽 통합 과정에서 변화, 구겐하임 효과를 필두로 한 문화도시화가 바로 그것들이다. 끝으로 이와 같은 변화 양상들에서 드러나는 기존 민족(nation) 담론의 약화 속에서 바스크는 어떤 길로 나아가야할지 혹은 바스크를 바라보는 우리는 어떤 태도를 견지해야할 지에 대해 간략히 논해보고자 한다.

 

간략한 바스크 지방의 역사 속 변화들

적어도 신석기시대(BC 4000년경) 이래로 지금까지 이베리아반도 북쪽, 피레네 산맥 남쪽에 거주해온 것으로 알려진 바스크인들에게 있어 태고적 정체성의 가장 중요한 상징은 바스크어(에우스케라)인데, 이 바스크어는 대부분 유럽인들이 사용하는 인도유럽어가 아니라는 것에 대부분의 학자들은 동의를 한다.

논의의 편의를 위해 특히 19세기 말 현대 이후의 바스크의 역사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자면, 이 시기 빌바오를 중심으로 바스크 일대는 스페인의 대표적인 산업 도시로 떠오른다. 철광과 조선 산업을 중심으로 하는 중공업의 발전 속에서 상당한 이익을 획득하였고, 이 과정에서 바스크 지방은 까딸루냐 지방과는 달리 중앙정부의 혜택을 받으며 어느 정도 포섭되게 된다. 이는 기존의 분리성과는 구별되는 변화로, 특히 바스크 과두 엘리트로 산업 및 이익은 집중되고 이들은 스페인 국가와의 긴밀한 연계를 맺기 시작한다. “바스크 대기업가들은 스페인 전체의 재정체계를 지배하는 전국 규모의 재정 혹은 은행 회사들과 긴밀하게 연계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카탈루냐의 산업 부르주아들에 비해 스페인 국가와의 관계가 훨씬 밀접했고, 바스크의 지역적 대의명분에는 별 이해관계도, 관심도 갖지 않았다.”라는 말이 이를 적실히 보여준다. 어찌되었건 바스크는 19세기 후반 이베리아반도 전체에서 산업화와 번영의 대명사로 불리어지게 되었으며, 그의 명성에 걸맞게 강철조선화학 산업이 유례없이 호황을 이루었으나 80년대 극심한 경기 침체를 맞는다.

이 시기에 산업활동의 침체에 수반되는 구조적인 변화가 일어났는데 구체적으로 노동시장의 변화, 치솟는 실업률, 새로운 방식인 계약 노동의 증가, 비공식적 경제의 발달, 기술자의 증가와 산업노동자들의 감소에 따른 직업 구조의 변화, 많은 폐쇄에 의한 산업 구조의 공간 규모 축소등이 일어났다. 이러한 침체는 빌바오 산업의 태생적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 것으로 수출과 해외시장이 아니라 유화책의 일환으로 프랑코 총통의 통제와 비호 아래 국내경제에 대한 지나친 의존에 근거하여 이루어진 성장이었기에, 유럽경제공동체 가입의 과정에서 자연히 산업보호 철폐라는 강력한 요구를 직면하며 어려움을 겪게 된 것이다.

결국 이와 같은 자체의 구조적 문제에 세계적 경기침체까지 맞물리면서 전반적인 산업침체를 막을 수 없게 되었고 설상가상으로 서비스부문이 제대로 발달되지 않은 상태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태는 도시의 사회적·환경적 위축을 가져왔을 뿐 아니라, 도시민들의 정신적·물리적 스트레스를 가중시키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의 심각한 상황은 수치상으로도 드러나는데, 1975년에 2.3%였던 실업률은 198626%에까지 이르렀고 이 중 무려 50%18세에서 25세 이하 연령층이 차지하였던 것이다.

 

최근 변화의 양상들 - 몬드라곤의 성공과 부작용

이와 같은 전반적인 도시의 침체는 미디어에서 확대 재생산되는 ETA에 대한 이미지와 겹쳐 바스크 전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의 확산에 기여하였다. 그리고 그 확산 속에서 실제 바스크인들 또한 무기력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바스크 지방은 다양한 측면에서 새로운 변화들을 겪으며 위기를 극복하고 있다. 그 실질적 성과의 여부와는 별개로, 적어도 현재까지는 국내는 물론 세계 각지에서 성공 사례로서 부각되고 있는데 여기서는 협동기업 몬드라곤의 사례와 구겐하임 미술관을 필두로 한 문화도시화, 그리고 유럽연합의 구체적 통합 과정에서 대두되는 지역성의 문제 측면에서 이 현재적 측면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바스크 지방의 현대적 변화에 조금이나마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우선, 몬드라곤은 협동조합 산업의 성공 사례로 불리우며 자본주의 몰인간성과 사회주의의 비효율을 극복하는 대안으로 각광받고 있다. 나는 그 기원을 바스크 지방에 두고 있다는 데서 주목할 필요성이 있다고 여겼다. 몬드라곤의 성공에 힘입어 가난했던 광산촌은 30년만에 고층아파트와 현대식 건물이 즐비한 아름다운 소도시로 탈바꿈 가능해졌고 대학, 은행, 병원도 협동조합으로 운영되고 모두는 공동출자자인 동시에 근로자인 구조를 지니고 있다.

흔히들 몬드라곤 협동조합 복합체가 바스크 지방의 정치 문화의 산물이라고 평가한다. 스페인의 다른 지역 지역과 달리 가톨릭 사제가 젊은 기업인들에게 영향을 끼쳤고, 공동체주의적 농민문화가 기업 활동에도 작용하였으며, 바스크 민족주의가 협동조합을 앞으로 다가올 민족 국가건설에 유용한 도구로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반면에 1975년부터 몬드라곤에 주목한 코넬 대학 사회학자 윌리엄 화이트와 캐서린 화이트 부부는 현지 조사를 통해서 바스크 출신 지도자들의 독특한 인간중심의 조직문화라는 개인적 요소를 더 강조하였다. 그런가하면 바스크의 정치와 문화가 몬드라곤의 형성에 영향을 끼친 사실이 중요하지만, 그것 보다는 1980년대에 산업적 위기가 도래하고 취약한 스페인 경제가 강력하고 경쟁력 있는 유럽시장에 통합된 환경적 요인을 강조하는 평가도 있다. 어느 쪽이 되었든 중요한 것은 세계적 경제 위기의 시대에 새로운 가능성의 영역으로 평가받는 몬드라곤의 방식이 바로 우리가 주목하는 바스크라는 지역의 특수적인 환경 속에서 배태된 산물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이 성공이 그들을 낳은 모태로서 바스크 지방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매우 흥미로운 일임에 틀림없다.

주목할 만한 지점은, 몬드라곤이 지역 경제의 활황 등을 돕더라도 무조건 긍정적인 측면만 지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인데 가령 기존의 남녀간 차별의식이 잔존하는 가부장시대와는 달리 조합에서 남녀를 완전히 평등히 대우하는 관행 속에서 이혼이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전통적 가족의 해체 양상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성별 간 불평등 속에서 여성의 경제력이 뒷받침되자 가족 간의 보완적 관계가 대체적 관계로 변화되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ETA의 경우 몬드라곤을 혐오하고 이들 계열사에 테러를 자행하기도 한다. 이들에게 있어 몬드라곤은 바스크족의 배신자들인 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ETA가 최근 그 지지도를 급속도로 잃어가는 것과 달리, 세계 곳곳에서 몬드라곤에 주목하는 것을 통해 볼 때 기존에 ETA가 점유했던 바스크의 상징 포인트가 변화하는 듯 보이는 점은 유념할만 하다.

 

최근 변화의 양상들 - 유럽 통합의 흐름 속 변화

다음으로, 유럽 통합의 흐름 속에서 바스크의 변화를 가늠할 필요가 있겠다. 유럽 통합은 유럽 공동체 안에서 거주민들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는데, 여기에 더해 80년대 이래 중남미, 아시아, 북아프리카로부터 많은 수의 이민이 스페인으로 유입되고 있으며 바스크로도 많은 수가 유입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지역성에 결부된 문화적, 언어적 정체성이 유지되기 어려운 여건을 조성하고 있는데 산업팽창과 더불어 이미 많은 유입이 있었던 5,60년대와는 달리 스페인어를 태생어로 배우지 않은 외국 출신들의 유입이라는 점에서 더 큰 변화의 바람이 일어나고 있다. 이들의 경우 바스크어와 같이 그 지역에서만 소통되는 지역어보다는 전국적은 물론 그 지역에서도 의사소통에 불편이 없는 스페인어를 택하고 배우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바스크성에 있어 핵심적인 언어부터 기존의 견고하던 많은 것들에 변화 가능성이 엿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균열의 조짐들이 곧 정체성의 해체로 이어지는 것 같지는 않다. 유럽연합(EU)지역의 총합체로서 유럽 (Europe of regions)’이라는 개념을 지지하며 유럽 내 지역의 발언권을 인정하고 있고, 이렇게 바스크는 유럽의 일원으로서 스페인이라는 국가적 단위를 넘어 독일, 핀란드와 동등한 위치를 부여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유럽연합의 출범과 함께 국민국가(nation-state)의 지배와 간섭을 넘어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는 지역성으로서 바스크를 떠올리게 한다. 구체적으로 마하트리히트(Maastricht) 조약에 의해 지역 위원회가 설치되어 주요 현안에 있어 지역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있고, 이 위원회의 21 명의 스페인 대표 중 17명이 각 자치주의 대표들이다. 유럽연합이 이와 같이 지역의 발언권을 존중하는 이유는 단순히 국민국가 차원의 모임이 아니라 유럽 내의 다양한 지역성이 화학적으로 융해되어 평화롭게 공존하는 공동체를 지향하기 때문이고, 지역성의 존중이 국민국가의 경계가 약화되는 결과를 가져와 유럽연합의 결속력을 높일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한 이유가 될 것이다. 어찌되었건 이러한 흐름 속에서 바스크와 같은 지역 정부들은 자신들이 속한 국가의 중앙 정부의 간섭을 배제한 채 직접 연결될 수 있는 통로가 열린 것이고, 유럽 소수언어국과 같은 기구에 의해 통합체 내의 지역어 보호 방침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흥미로운 설문조사 결과는 이와 같은 변화를 보다 뒷받침한다. 6세부터 15세까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까딸루냐, 바스크, 안달루시아, 북부 이탈리아, 중앙 이탈리아에 관한 연구를 살펴보면 이들은 독립성이나 지방으로의 권력 이양을 원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있어선 유럽인(European)이 되는 것이 국가적 정체성보다 더 중요하다는 걸 주장하면서 말이다. 물론 그들의 지방적 정체성보다 이를 더 중요시하진 않았지만 말이다.

요약하자면, 유럽 통합 속 새로운 인구의 유입은 바스크성에 균열 가능성을 내고 있지만, 제도적 차원에서 바스크성과 같은 지역성에 대한 보호의 움직임은 이들이 앞으로 어떤 정체성을 갖게 될지, 어느 한 방향으로 확언은 못하더라도 더더욱 혼종된 양태로 나타날 것임을 분명히 암시하고 있다. 다시 말해, 그것이 실질적·생활적 차원과 법적·제도적 차원의 분리로 나타날지, 기존의 국가성과 지역성의 대립을 넘어선 하나의 유럽성으로 이어질지 확언할 수는 없지만 이전에 비해 더더욱 입체적이고 혼종된 양태로 변화되고 있다는 사실만은 틀림없다는 것이다.

 

최근 변화의 양상들 - 구겐하임 효과를 필두로 한 문화도시화

끝으로 구겐하임 효과혹은 빌바오 효과라고까지 칭해지는 도시 환경 프로젝트, 재생 프로젝트의 대표적 사례로 불리우는 빌바오에 불어닥친 변화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고자 한다. 4천 송이의 꽃으로 만들어진, 미술관 앞에 만들어진 조형물 퍼피로도 유명한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은 쓰러져가던 바스크 경제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으로 유명하다. 첫 해 130만명의 입장객과 이들로부터 파급된 관광 수입으로 1억 유로를 넘게 벌어들여 기존의 미술관 유치비를 단 한 해만에 해치우고 문화도시의 모범 사례로 세계 각국에 소개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빌바오가 처음부터 이리 알려졌던 것은 아닌데, 처음 언급하였듯 20세기 중반 이후 찾아든 산업의 위기와 도시의 쇠퇴는 실업률의 증가를 가져왔으며 여기에 고질적인 테러 문제와 반환경적인 도시 상태는 빌바오 사회 전반의 침체를 가속화시키는 또 다른 요인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 직면하여 도시정치인들은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고 빌바오의 회생과 변화를 우선적인 정책과제로 삼아야했다. 그리고 이러한 도시재생계획 안에는 별도로 구겐하임미술관의 유치를 포함시키게 되는데 이는 세계적인 명성을 보유하고 있는 구겐하임의 브랜드 가치를 이용하여 구산업도시라는 기존의 이미지에서 현대적이고도 미래지향적인 도시로의 변신을 꾀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대형프로젝트의 이러한 단기적이고 가시적인 성과 이면에는 그에 못지않은 위험성과 문제점이 도사리고 있었는데, 프로젝트의 추진과정에서 나타난 지방정부 주도의 탑 다운(top-down) 방식과 지역사회로부터의 의견수렴과정의 생략과 지지의 결여는 민주사회의 기반 자체를 위협하는 것이었다. 지금에서야 결과가 좋으니 세계 각지에서 이 프로젝트의 진행자들을 인터뷰하곤 하지만 작업 착수 당시에는 많은 시민들의 반대가 있었던 것이다. 더불어 미국 구겐하임 미술관의 분관 중 하나라는 사실은 미국의 문화적 제국주의를 부추기고 양산시키는 단초가 되었다는 비판도 상당하다. 실제 지금의 표면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빌바오의 변화를 맥구겐하임((McGuggenheim)라는 이름 아래 장소를 단일화하고, 표준 건축기법들을 반복하고 일률성과 집중성을 증진시키는 거대문화프로젝트의 경향에 대한 지적 차원에서 바라보는 시선들 또한 많다. 더불어 구겐하임 미술관은 다른 곳에도 설립되어 가는 중에 있기 때문에 향후 빌바오의 차별화에 심각한 장애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 또한 있다. 현재까지의 경제적 성과는 인정할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이것이 지속가능한 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파격적인 이미지 변신과 성공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과연 빌바오를 포함한 바스크 지방 전체의 문화를 대변할 수 있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아이콘인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스페인에서뿐 아니라 유럽 전체에서도 역사적으로 강한 민족성과 민족문화에의 집착을 보여 왔던 바스크인들을 생각할 때 구겐하임 미술관의 표상은 지나치게 생소하고 동떨어진, 그야말로 수입된 이미지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영해가 이에 대해 거대한 건축물이 빌바오의 옛 산업지대를 대체하며 과거와는 단절된 빌바오, 달라진 바스크에 대해 무언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바스크인들의 정체성을 이루는 랜드마크(land mark)라 하기에는 어딘가 억지스러운 부분이 있다며 오히려 빌바오 구겐하임 건축물은 국제화와 세계화의 추세에 떠밀려 표류하는 바스크 민족문화의 혼돈과 위기를 보여주는 산물은 아닐까 반문하게 된다한 지적은 매우 타당하다.

그렇다면 빌바오 주민들의 반응은 어떨까? 이영해의 논문에 따르면 이들의 입장은 다분히 이중적이다. 56%가 자신의 도시에 대해 10년 전보다 더 큰 자부심을 느낀다고 대답한 반면, 다른 한편으로는 구겐하임미술관과 자신들을 동일시하는 빌바오 시민들은 의외로 많지 않다는 사실에서 그러하다. 즉 세계인들의 관심과 주목의 대상인 구겐하임 미술관은 어떻게 보면 그들에게는 너무나 사치스러운 차고와 같아서 그야말로 소수를 위한 전유물과 같이 여겨지는 것이다. 비록 구겐하임 미술관이 빌바오의 대표적인 아이콘이요, 상징과도 같은 존재로 알려져 있지만, 실상 빌바오 주민들의 삶과는 어느 정도 유리되어 존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란 것이다.

 

나가며 - 기존의 민족(nation)담론의 약화 속 바스크가 나아가야할 길

Gabriel Gatti는 바스크를 두고 이전의 불침투성의 정체성에서 슈퍼마켓 정체성(supermaket of identity)으로 즉, 다공성·투과성의 정체성으로 변화하는 중이라 했다. 기존의 ETA로 대변되던 정치적인 영역은 콘서트 홀, 밤문화의 영역, 대량 소비의 장소와 같이 여가와 오락에 자리를 내주고 있으며 구겐하임으로 대표되는 문화적 침투도 여기에 해당될 것이다. 이 속에서 이전까지 정치적 이슈에 익숙하던 세대들은 당혹스러운 감정을 느낀다. 지금까지 살펴본 몬드라곤의 사례, 유럽 통합의 과정 속의 변화들, 그리고 구겐하임 효과로 일컬어지는 문화도시화 과정에서 생긴 변화들과 같이, 전례 없는 새로운 형태의 변화와 침투들 속에 기존의 견고하던 바스크 세계에는 균열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조사하는 과정에서 어느 게 진짜바스크의 모습인지 확신할 수 없었던 어려움은 역으로 바스크 역시 다른 것들과의 경계가 흐릿해져가는 오늘날 세계화의 흐름 속에 놓여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게 아닐까?

 

본문에서 다루지 않은 몇몇 연구들은 이와 같은 생각을 보다 강화시켜주었다. Linstroth의 연구는 북미에서 바스크에 대한 뉴스보도의 85%가 테러리즘에 관한 것과 같이, 미디어에 의해 왜곡, 부풀려진 측면마저 있는 바스크의 강한 지방색·독립성 이미지의 실체에 대해 보여준다. 다시 말해, 정치적인 이데올로기를 강화시키기 위한 차원에서 인터넷, TV방송, 비디오 등의 다양한 매체로부터 배너, 포스터, 그래피티, 보석류 등의 상품까지 정치적인 이미지가 투사되고 소비되었다는 것이다. 즉 이를 역으로 생각할 때, 우리가 흔히 바스크하면 떠올리는 테러부터 인종적·혈통적인 순수성 등등의 이미지는 실제의 바스크 모습과는 거리가 있음을 방증한다. 더불어 실제로 지금까지 살펴본 현대 바스크 지방의 다양한 변화 양상들에서 고정된 이미지와 달리, 끊임없이 변화하는 중인 바스크의 역동성을 엿볼 수 있었다.

더불어 Gatti는 과학적 담론이 바스크성(basqueness)이 실제로 강력한 생물학적 기원을 가지고 토착적 인종인 것처럼 만들었다며 이와 같은 방식으로 바스크 인류학이 많은 것들을 얻었음을 역설한다. 시골적 환경과 같은 공간(space), 언어학적으로 그리고 생물학적으로 토착적이라든가 로마제국에 복속되지 않은 주체들과 같이 특정한 문화적 성질과 결합된 상을 제시하였고, 이러한 작업들에 힘입어 바스크성이라는, 특별하고도 진짜인(authenticity), 문화적·과학적 토템(totems)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이처럼 바스크의 기원(origin)에 대한 믿음이 허상임은 김원중의 역사적·통시적 연구에서도 읽어낼 수도 있다. 김원중은 최근의 수정주의 연구 경향에 대한 언급 중에 다른 유럽 국가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스페인에서도 19세기 동안 많은 경우 지역건설이 국가건설 과정의 일부로 여겨졌으며, ‘지역에 대한 사랑의 조장이 국가에 대한 사랑을 증진하는 첫 번째 단계로 인식되었다 현상에 대해 말한다. 지금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오늘날 바스크 지방의 분리성과 같이 스페인 지역주의 모델이 초월적·보편적·고정적 현상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변해온 흐름의 현재적 양상에 불과함을 눈치챌 수 있다. 앞서 Gatti의 연구와 함께, 결국 이와 같은 시간적 축에서 끊임없이 변화했듯 바스크 역시 끊임없는 변화의 산물이며, 이 변화라는 것은 계속해서 현재 진행형이란 것이다.

위의 연구 결과들의 공통성은, 어쩌면 이 바스크성으로 대변되는 네이션(nation)이라는 것이 단일하게 규정하기 어려우며, 무엇보다도 끊임없이 재구성되어 가는 과정에 놓여있는 게 아닐까와 같은 의문과 시사점을 던져준다. 이와 같은 연구들이 근래 들어 쏟아진다는 것 역시 역으로 약해진 단일성 및 규합에 대한 방증일 수 있겠다.

그렇다면 기존의 민족 담론의 약화 속 바스크성에 균열이 일어나는 가운데 바스크가 나아가야할 길은 무엇이 되는걸까? 이는 매우 거창하고도 어려운 질문이다. 사실 잘 모르겠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확실한 것은 앞서 계속해서 살펴보았듯 끊임없는 변화들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현대의 변화들에서 보듯, 규정받지 아니할, 새로운 정체성을 끊임없이 구성,구성 또 재구성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중요해지는 것은 소통이 아닐까? 혼종성, 교차, 횡단, 초월 등의 흐름 속에서 서로와 조금이나마 가까워지는 것이 가능해지는 지점은 바로 소통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사람들의 유입이란 상황에 놓인 바스크에게도 사람들간의 소통은 중요한 화두가 될 수밖에 없으며 구겐하임 미술관으로 대변되는 문화 전략 역시 상징에 그치지 않고 지역적 기반과 결합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세계성과 미래성의 표방은 사실상 공허한 메아리와 같기 때문이다. 또 몬드라곤으로 인한 가정의 변화도 소통의 필요성을 보여준다. 비단 바스크 내부에 한정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러한 바스크를 바라보는 우리에게 있어서도 소통은 견지해야 하는 중요한 태도가 아닐까. 처음 언급하였듯 바스크에 대한 오리엔탈리즘’, ‘신화적사고를 접어둘 필요성이 있다. 모든 것은 신비화된 것을 벗겨낼 때, ‘타자에서 벗어나 우리가 되어 이해 가능성이 넓어지고, 그 시작점은 다른 세계의 문을 두드리는 작은 소통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 글도, 이 글에 이르기까지의 나의 노력들도 바스크라는 세계에 대한 소통 과정의 일환에 놓여있었음을 잊지 않아야겠다.

참고문헌

[국문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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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호, 유승호 달콤살벌한 문화이야기, 새로운사람들, 2008.

이은해, 유럽의 전통산업도시에서 문화·예술도시로의 변모 :빌바오(Bilbao)에서의 '구겐하임효과(Guggenheim Effect)'에 대한 비판적 고찰, EU연구25, 2009, 115-144.

임호준, 작가주의와 정치성: 흘리오 메뎀 영화의 바스크성, 이베로아메리카연구202, 2009,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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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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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tti, Gabriel, Basque society: structures, institutions, and contemporary life, University of Nevada Press, 2005. ( 구글 검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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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영상

류지열, KBS 스페셜 스페인 몬드라곤의 기적, 2011. 3. 27.